갱년기 무기력감으로 힘들었던 40대 주부의 일상이 산책이라는 작은 습관으로 어떻게 바뀌었는지 경험을 바탕으로 나눕니다. 이 글에서는 제가 무기력함을 느꼈던 시기, 산책을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와 산책이 몸과 마음에 도움이 된다는 의학적 정보, 그리고 산책을 통해 변화된 나의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1. 어느 날 느낀 활력 없는 삶
40대 중반을 넘기던 어느 날 문득,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주 들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고 점심 이후엔 이유 없이 멍해졌습니다. 식욕이 없고 배고픔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체력이 약해져서 게을러진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생각해 보니 매일이 똑같은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어제와 오늘이 똑같고 내일도 오늘과 다르지 않은 일상일 거라는 것이 예상되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하루가 쳇바퀴처럼 반복되며 서서히 활력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간관계도 축소 되었습니다. 동네 지인과의 차를 마시며 담소 나누던 시간들이 더 이상 즐겁게 느껴지지 않고 귀찮게 느껴졌습니다. 사람을 싫어하지 않는데도 만남이 즐겁거나 기대되지 않았습니다.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편했고 누군가와 대화 나누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적어지다 보니 대화 나누는 것도 어색해졌습니다. 누가 나를 부르면 대답은 하지만, 대화에 온전히 집중하기 어려운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잠이 잘 오지 않았고, 닥치지도 않은 걱정들이 머리를 맴돌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잠들기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됐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힘들고 피곤했고, 딱히 힘든 일이 없어도 무기력했어요. 작은 일에도 짜증이 났고, 때로는 눈물이 나올 것 같은 날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검색한 ‘갱년기 증상’이라는 단어에 제 일상이 하나씩 겹쳐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주 우울하거나 불안해지고, 식욕이 줄고, 피로가 쉽게 몰려오고, 집중이 되지 않는 것. 모두 갱년기의 전형적인 증상이라는 글을 읽고 나니 문득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벌써 내가 갱년기일까? 하는 생각에 당황스럽기도 했고 한편으론 안도감도 들었습니다. 이유 없이 힘든 게 아니라 이유가 있었구나 싶었거든요.
무언가 변화를 줘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거창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 할 수 있는 작고 쉬운 변화, 그래서 선택한 게 바로 산책이었습니다.
2. 무기력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걸음: 5분 걷기
처음에는 의욕도 없었습니다. 나가서 걷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죠. 하지만 진짜 말 그대로 ‘밖으로 한 걸음 나가 보자’는 심정으로 동네 공원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돌고, 벤치에 앉았다가 돌아오는 게 전부였어요. 아무 이유 없이 집밖으로 외출하는 것이 어색해서 일부러 외출의 목적을 만들어서 5분이라도 나가려고 의식적으로 행동했습니다. 예를 들면 커피를 사러 외출한다거나 저녁 찬거리를 사러 마트에 간다거나 하는 등이요. 이런 행동을 하니 놀랍게도 집밖으로 나가는 것에 조금씩 저항감이 작아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 작은 움직임 하나가 제 하루를 조금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햇빛을 얼굴에 받고, 봄바람이 살짝 불어오는 그 짧은 순간에도 뭔가 상쾌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평소엔 거들떠보지 않던 나무나 꽃들이 눈에 들어오고, 사람들의 걸음걸이나 표정이 새삼 다르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날 밤, 평소보다 조금 더 빨리 잠이 들었습니다. 무의미하던 하루에 아주 약간의 감각이 생긴 느낌이랄까요. 다음 날에도, 또 그다음 날에도 짧게나마 걷는 시간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은 10분도 채 안 되는 날도 있었지만, 저는 그것을 ‘성공’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렇게 걷는 일이 제 일상에 조금씩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아침이나 저녁, 무작정 걸었습니다. 걸을 때의 핵심은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 포인트였어요. 걸으면서도 어떤 걱정거리나 공상에 잠기다 보면 차가 지나가는 것도 못 느끼고 머릿속이 산만한 상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걷는 것에만 집중하며 걷다 보면 생각이 정리됐고, 마음이 평온해졌습니다. 예전엔 같은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는데, 걷는 동안은 멍하니 하늘을 보기만 해도 복잡했던 마음이 정돈되는 것 같았어요.
3. 산책은 내 작은 회복의 시작
두세 주가 지나자 변화는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첫 번째는 잠의 질이 달라졌다는 점이었습니다. 산책을 한 날은 확실히 더 쉽게 잠들 수 있었고, 깊은 수면이 가능해졌습니다.
두 번째는 마음의 안정이었습니다. 예전엔 사소한 일에도 민감하고 예민했지만 걷는 시간이 쌓이면서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기는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말수가 줄었던 제가 남편과 이야기하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난 것도, 이런 변화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무기력증의 완화입니다. 물론 하루하루 활기가 넘친다고는 말 못 하겠지만, 적어도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생각에 끌려가지 않게 되었어요. 지금도 힘든 날은 있지만, 몸이 움직이니까 마음이 따라오더라고요.
실제로 산책은 정신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연구가 많습니다. 특히 갱년기 시기의 여성은 호르몬 변화로 인해 우울감, 불안, 무기력 같은 증상을 겪기 쉬운데, 걷기와 같은 저강도 유산소 운동이 엔도르핀 분비를 자극하고 스트레스를 낮춰주는 데 효과가 있다는 것이 의학적으로도 입증되어 있습니다.
비싸고 복잡한 것도 아니고, 장비가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단지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가는 것, 그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작은 회복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4. 산책, 마음과 몸을 함께 회복시키다
산책을 일상에 들이기 전엔 단순히 ‘걷는 것’에 어떤 변화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걷기라는 작은 습관은, 생각보다 훨씬 큰 심리적 안정과 신체적인 활력을 주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미국심리학회(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에서는 규칙적인 걷기 운동이 우울증 위험을 낮추고, 스트레스와 불안을 완화하며, 전반적인 기분을 개선하는 데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들을 지속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스탠퍼드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도시보다 자연 속에서의 산책이 우울감을 유발하는 뇌 활동을 더 크게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걷는 장소가 주는 심리적 안정감이 생각보다 크게 작용한다는 뜻이죠.
영국 정신건강재단(Mental Health Foundation) 역시, 걷기와 같은 가벼운 신체활동이 자존감을 높이고 스트레스를 줄이며 수면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UCLA Health에서는 하루 7,500보 이상 걷는 것이 우울 증상을 유의미하게 낮춘다는 연구 결과도 소개된 바 있습니다. 생각보다 멀리까지 가지 않아도 우리 일상 안에서 충분히 가능한 거리입니다.
정신적인 회복뿐만 아니라, 걷기는 신체 건강 면에서도 다양한 이점을 줍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규칙적인 걷기 운동이 심혈관 질환 위험을 낮추고, 혈압 조절과 체중 관리, 뼈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밝혔습니다.
하버드대 공중보건대학원은 걷기 같은 중강도 운동이 고강도 운동만큼 혈압, 콜레스테롤, 당뇨 예방에도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를 제시했습니다.
메이요 클리닉(Mayo Clinic)에서도 걷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로 체중 감량, 심혈관 건강, 수면의 질 향상, 근육과 뼈 강화 등을 꼽고 있습니다.
또 영국 심장재단(British Heart Foundation)은 하루 11분 정도의 활발한 걷기만으로도 조기 사망 위험과 심혈관 질환, 일부 암 발병률을 낮출 수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처럼 전 세계의 다양한 연구들은 걷기라는 단순한 행위가 정신과 육체, 두 영역 모두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온다는 과학적 근거를 함께 보여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저는 산책을 통해 내 마음이 차분해지고, 몸이 가볍고 건강해지는 변화를 스스로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걷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회복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 결과들을 증명하듯 가벼운 산책을 한 지 2주가 지나면서 허벅지의 근육이 단단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정용 인바디 체중계로 인바디 측정을 해보았는데 복부 지방률이 0.88%에서 0.81%로 감소했고 골격근량은 17kg에서 17.2kg으로 근소하지만 증가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변화한 수치를 눈으로 확인하자 산책에 대한 의욕이 더 솟구쳤어요. 산책으로 이렇게 마음과 몸의 건강이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습니다.
누구에게나 사는 게 무거운 날들이 있습니다. 특히 40대 중반을 넘어서며 몸도, 마음도 전처럼 움직이지 않을 때가 있죠. 그럴 땐 너무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저는 그저 조금 걷기 시작했을 뿐이니까요.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가 오늘 하루 무기력했다면, 내일은 10분만 걸어보는 건 어떨까요. 오늘보다 나은 내가, 내일 그 길 위에서 기다리고 있을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