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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정보

26주 4일, 940g 조산아로 태어난 아이… 중학생이 된 지금, 제가 품는 질문들

by 함께하는 수야 2025. 3. 29.

15년 전, 저는 제 아이를 26주 4일 만에 출산했습니다.

몸무게는 940그램. 인큐베이터 속 작고 연약한 아이를 처음 본 그날부터 제 삶은 잘 자랄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 함께 시작됐습니다. 시간이 흘러 지금 아이는 중학교 2학년이 되었지만, 저는 여전히 비슷한 질문을 품고 살아갑니다. 단어를 외우는 것도, 수학 개념을 이해하는 것도 너무 힘들어하는 아이를 보며 무언가 놓친 게 있었던 건 아닐까?하는 마음이 자주 들곤 합니다.

이 글은 정답을 알려주는 글이 아닙니다. 조산아로 태어난 아이의 학습과 발달을 지켜보며 부모로서 품게 된 질문들을 진심을 담아 기록해 보았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 중에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면, 그 고민을 혼자만의 것으로 느끼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써 내려갑니다.

조산아 학습부진, 유전만의 문제일까?

아이의 학습 능력을 고민할 때마다 저는 늘 유전이라는 단어를 떠올립니다. 저와 남편 모두 학업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4년제 대학을 졸업했고, 남편은 박사과정을 수료했기에 자연스럽게 우리 아이도 평균 이상의 학습 능력을 갖출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우리 아이는 단기 기억력이 약하고, 외운 내용을 오래 유지하지 못하며, 수학 개념을 이해하고 문제에 적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유치원 시절엔 영어 노래를 외워 부르지 못했고,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도 한글을 깨우치지 못해 방문 학습 선생님 도움으로 어렵게 배우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내내 구구단을 외우는 것도 힘들어했지요. 구구단은 운율에 따라 반사적으로 툭 튀어나와야 하는데, 그게 잘 되지 않았습니다.

학교 수업 내용을 미리 살펴보고 복습하는 차원에서 스마트 학습기기를 활용해 예습과 복습도 해보았지만, 흥미를 느끼지 못해 학습량을 따라가기 어려워했고 결국 5년간 사용하다 중단했습니다.

특히 수학 과목에서 어려움이 컸습니다.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 등 모든 영역에서 계산이 느리고 개념 이해도 부족했습니다. 학습에 들이는 시간은 길었지만, 결과는 좀처럼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하는데도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그런 안타까운 모습, 혹시 주변에서도 한 번쯤 보신 적 있으실까요?

마치 지식이 머릿속에 쌓이는게 아니라,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습니다.

조산아로 태어난 아이들에게 이런 모습은 흔한 걸까요?

답답한 마음에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일부 소아정신과 전문가는 조산아의 뇌 발달이 만삭아보다 미세하게 지연될 수 있으며, 그 차이는 초등학교 고학년 또는 중학교 이후 더 뚜렷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합니다.

Luu et al.(2009)과 Aarnoudse-Moens et al.(2009)의 연구에 따르면, 극소저체중 또는 조산아들은 학령기에 작업 기억력, 집중력, 인지 처리 속도 등에서 평균보다 낮은 경향을 보인다고 합니다. 이는 단순한 성장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발달 경로 자체가 조금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특히 작은 체중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기억력, 주의력, 인지 처리 속도 면에서 만삭아와 차이를 보일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모든 조산아가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처럼 특별한 신체 질환이 없는데도 학습 기초가 안정적으로 형성되지 않는 경우, 출생 전후의 뇌 발달 과정을 되짚어보는 것도 하나의 힌트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전신마취, 아이 뇌 발달에 영향 있나?

아이가 태어난 후 신생아 중환자실 인큐베이터에서 여러 검사를 받았고, 정기적인 뇌출혈 검사와 시술을 위해 여러 번 마취를 했습니다.

첫 시술은 미숙아 망막증 레이저 시술이었고, 일주일 뒤에는 탈장 수술도 받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전신마취를 두 차례 이상 경험했지요. 당시에는 '살아 있어 줘서 다행이다'라는 생각뿐이었기에 마취가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할 겨를조차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아이가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면, 그때의 마취가 혹시 뇌에 영향을 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실제로 2016년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미국 소아마취학회(ASA)는 3세 이하 영유아가 반복적이거나 장시간 전신마취를 받을 경우 뇌 발달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단 한 번의 짧은 마취는 큰 위험이 아니지만, 반복적이거나 장시간에 걸친 마취는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는 모든 아이에게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며, 장기적인 인간 대상 연구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그럼에도 아이의 현재 모습을 이해하는 데 있어 과거의 의료적 경험도 중요한 요소임은 분명합니다. 그 선택이 최선이었음을 알면서도, 부모로서 적은 가능성 앞에서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아기 때 병원에서의 모습
탈장 수술후 힘든 회복중

디지털 시대, 아이의 감각은 어떻게 바뀌었나?

저는 가끔 우리 세대의 어린 시절과 지금 아이들의 유년기를 비교하게 됩니다.

우리는 골목에서 놀고, 자연 속에서 뛰어놀며, 종이책을 읽고, 온몸으로 놀이를 통해 배웠습니다. 돌멩이와 잡초로 소꿉놀이를 하고, 논두렁에서 송사리와 붕어를 잡으며, 봄이면 쑥과 냉이를 캐던 기억이 납니다. 친구들과 사방치기를 하며 규칙을 익히고, 가을이면 송편을 만들기 위해 산에 솔잎을 뜯으러 다니고, 겨울에는 꽁꽁 언 논에서 썰매를 탔습니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은 화면 중심의 자극에 훨씬 더 익숙합니다. 스마트폰, 태블릿, 유튜브... 자극은 많지만 감각적 경험은 줄어든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 거죠.

뇌는 본래 몸을 움직이고, 오감을 통해 배우는 기관입니다. 그러나 디지털 중심 환경에서는 단기 기억 위주의 정보 처리 방식이 강화되고, 깊이 있는 사고와 연결되는 뇌 구조 발달은 제한될 수 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특히 조산아처럼 초기 뇌 발달이 민감한 아이들에게는 자연 자극과 감각 균형이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결국 아이가 책을 싫어하고, 반복을 힘들어하고, 지식이 흡수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도 단순한 의지나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 요인의 영향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엄마로서 계속 질문할 수 있다는 것

그렇다고 아이의 학습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아이가 학교 수업을 잘 따라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것이 부모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의 학습 부진 이유를 이해하고 나서는 "왜 기억 못 하니?''라고 다그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한두 번 반복으로는 정보가 저장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끝없이 질문하고, 확인하고, 다시 고민하는 일의 연속입니다. 특히 조산이라는 특별한 시작점을 가진 아이를 키우며, 저는 더 자주, 더 깊이 질문하게 됩니다.

왜 이렇게 힘들어할까? 어디서부터 살펴봐야 할까? 내가 뭘 더 해줄 수 있을까?

그 질문들의 정답은 지금도 모두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도 그 질문을 놓지 않으려 합니다. 어쩌면 정답보다 중요한 건 질문을 멈추지 않는 태도일지도 모릅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비슷한 길 위에 있다면, 우리의 질문이 서로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이른둥이 부모라면

그래서 우리 아이가 학습 부진 외에 다른 문제는 없는지 궁금하신가요?

말씀드리자면, 현재 우리 아이는 학습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미숙한 폐성장으로 모세기관지염과 폐렴, 천식도 있었지만 지금은 또래보다 키는 조금 작아도 착하고 순수한, 건강한 아이로 자라고 있어요. 제가 아플 땐 약국에서 약을 사다 주고, 마트에서 저녁 찬거리도 스스로 사 오며, 엄마가 좋아하는 커피 심부름도 해줍니다. 영수증도 챙기고, 포인트 적립도 잊지 않아요.

천식은 평생 관리가 필요한 질병이라고 해서 걱정했지만, 마스크를 잘 쓰고 겨울엔 가습기를 틀어 습도 조절을 해주며, 주말마다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자연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미숙아 망막증 시술도 잘 되어 현재 시력은 안경 착용 시 0.6~0.7 정도입니다.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를 멀리하면 시력도 무리 없이 관리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아이 건강이 걱정되어 불안하고 조급한 분들이 계시다면, 제 이야기를 통해 조금이라도 희망을 품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학습 부진이 걱정되신다면, 즐거운 마음으로 아이에게 종이책을 자주 읽어주세요.

제 글이 당신에게 위로와 공감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건강한 아이 모습
이렇게 자랐답니다

 

참고자료:

FDA - Anesthesia and young children

PubMed - Luu TM, et al. (2009)

PubMed - Aarnoudse-Moens et al. (2009)